2020년은 누군가에게 멘토링을 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웠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매일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부트캠프에서, 나는 어떻게 한 해를 보내었는가를 돌아본다.

누가 코딩 부트캠프에 오는걸까

그들은 진심이고, 그 옆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나 또한 어느 한 순간도 진심이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코딩 한 번 배워보고 싶어서 등록하려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정말 간혹. 그러나 수강생 분들 대부분은 그간 내가 해오던 것을 잠시 덮어두고 커리어를 바꾸고자 위코드의 문을 두드린다. 웃으면서 오는 분도 있고, 울지 못해 쓴 웃음 지으면서 오는 분도 있다. 현실이 답답해 잘 다니던 직장을 시원하게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멋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결정은 현실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은 아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니던 학교에서 펜을 내려두고 부트캠프에 3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절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정말로 바꾸고 싶어서 큰 마음 먹고 내리는 결정이고, 이들은 진심이다. 이들이 처음 상담 신청을 남길 때의 마음이 어떤지, 처음 상담할 때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기대감이 무엇인지 나 또한 정말이지 잘 알고 있다. 다들 그 어느 때보다 걱정되고, 진심이고, 한 편으론 설렌다. 그 감정의 무게를 알기에 그 옆에서 같이 일을 하며 돕고 있는 나는 어느 한 순간도 진심이지 않을 수 없다.

같이 설레고 같이 신나고 같이 걱정되고 같이 극복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가

첫 출근을 하던 2020년 4월 20일로부터 약 열 달이 지난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일을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처음으로 던져본다. 조금 더 일찍 던졌어야 하는가 싶다가도, 그땐 답이 나오지 않았으리라.

이 글의 초고를 쓰던 몇주 전, 한 칼럼의 첫 문장이 인상깊어 스크랩해두었다.

유재석은 ‘위대한 코치’ 김태호 PD의 추임새를 거절하지 않는 것을 통해 자기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즐길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을 주고 싶다”는 김태호의 자극에 신나게 자기를 갈아 넣는 것이다.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 유재석을 대하는 김태호 PD의 모습을 떠올리자마자, 위코드 멘토가 떠올랐다. 내가 정의하기에 나는,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일을 하고 있다. 위코드를 찾아온 사람의 의지와 꿈을 연료로 그들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것이 내가 하는 첫번째 일이다. 구글에 교육을 검색해본다.

교육 : 사회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인간의 잠재 능력을 일깨워 훌륭한 자질, 원만한 인격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일’

참 신기하다. 내가 정말로 교육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정말로 멘토로서 내 옆 사람을 이끌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부터 내 생각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개발을, 코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사람이 스스로 더 공부할 수 있도록, 개발 학습 방법이 몸에 익을 수 있도록 잠재력을 길러내는 데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다. 김태호 PD는 절대 유재석에게 남에게 웃음을 주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주지 않았을테다. 유재석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코칭을 하고, 멘토로서 방향을 제시하고, 동시에 PD로서 해야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며 스스로도 굉장히 많이 성장했을테다.

그럼 나는 정말로 뭘했을까?

📍 2분기 - 몸으로 부딪혔던 멘토링의 시작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몰라서 일단 몸으로 최대한 많이, 최대한 오래 부딪혀봤다.

  • 입사 초반에는 막 7기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8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강생분들과 빠른 시간안에 친해지고 이 커뮤니티에 녹아드는 것이었다. 내게 첫번째로 주어진 업무는 크게 하나였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커리큘럼에서 보완해야할 사항을 찾아서 수정하는 것이었다. 믿기진 않지만, 사실 처음에는 고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묻는다면 고쳐야 할 것들을 쏟아내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때는 완벽해보였다.
  • 그와 동시에 입사 2주차 월요일에 가장 진행이 더디고, 어려워하는 수강생분이 많았던 7기 프로젝트팀, 형님의 파우치 팀과 롤렉스팀 프로젝트에 긴급 투입되었다. 그때의 내가 정말 뭘 알긴 했던건지 모르겠다. 수강생분 이름만 빠르게 외우고 10A에서 3~4시간씩을 달렸던게 기억난다. 그렇게 힘든 시간 보냈던 분들이 지금은 취업해서 어엿한 백엔드 개발자로 사회에서 가치 창출을 해내고 있다. 정말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봉현님, 정인님 정말 응원합니다. 이때 주어진 사내 개발 모델링에도 들어가서 열심히 마이그레이션도 공부했다.
  • 8기부터 긴장이 조금 풀리고 나서야 멘토로서 고민해야할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끝없이 늦어지는 수강생의 진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사람이 보고 공부해야할 복습 컨텐츠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때 정말 지훈님과 상록님의 영상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엄청났다). 친구처럼 편하게 같이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수강생이 사고하는 깊이를 깊게 해주려면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지도 고민했던 시기이다. 도움 많이 주신 시환님, 미선님, 승호님, 혜랑님 …
  • 9기는 역대급으로 백엔드 수강생이 많았던 기수다. 21명. 이 시기 정말 재밌었는데 진짜 너무 바빴어서 기억이 안난다. 눈 뜨면 선릉이었고, 눈 감으면 다시 아침이고 선릉이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몸이 부서질 것 같았던 기억은 난다. 20명의 백엔드 분들과 10A에서, 16A에서 열심히 모델링하고, conflict 해결하라고 마지막 다잉메세지를 남기고 마지막 전철 때문에 뛰고, 전철에서 리뷰하고, 10층과 7층으로 분리된 시기라 이동하면서 잃어버린 충전기가 두 개… 내 충전기들 다 어디갔니…

📍 3분기 - 머리 싸매고 컨텐츠 보완 / 커리큘럼 변경

코로나.. 코군분투 하면서 지켜내고 만들어낸 내 사랑 백엔드 커리큘럼 ver.2

  • 커리큘럼을 재정비하고, 이전 과제와 다음 과제 사이의 연관성을 높이기 위해 첫번째 타겟으로 위스타그램을 선정했다. 10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 구두로 전달하고, 구두로 확인하던 sign up, sign in 과제를 모두 github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mission을 list up 했다. 프론트엔드 과제를 잘 정비해둔 준식님 승현님 덕에 벤치마킹 수월하게 할 수 있어고, 백엔드 사정대로 바꾸는 데에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이 시기의 나를 정말 칭찬한다. 고생했어. 가능했던 이유는 때마침 와주신 병민님이 우리 기적의 수미님을 잘 케어해주신 덕이었다.
  • 11기부터는 제대로 위스타그램을 github에서 진행했는데, 필수 과제가 일찍 끝난 분들이 이후로 추가 학습을 할 수 있도록 mission을 굉장히 세분화해서 추가했다. 추가 학습 미션은 세세한 가이드가 없었는데도, 필수 구현을 제대로 한 분들은 자기만의 사고 과정을 토대로 나름의 로직을 가지고 구현하는 점을 확인했다. 역시, 내적 동기부여가 지속적으로 되는 사람에게는 기초가 잡혀있다는 가정 하에 응용과제는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음을 확인한 과정이었다. 초반 개념을 잘 잡아주는 것과, 끝없이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 개발하는 시간이 적은 것에 대한 초조함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부를 더 시작했고, 코드 리뷰를 하면서 배우는 점이 정말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며 극복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코드리뷰의 진짜 목적은 따로있다. 라는 글이 도움이 많이 됐다.
  • 12기 개강 얼마 후, 코로나가 심해져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온라인으로 과정을 진행하게 되면서 컨텐츠 보완에도 어려움이 생겼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온라인에 최적화된 수업 자료를 생산하면서 더욱 정비된 백엔드 커리큘럼이 완성됐다. 이 때, 병민님, 준식님, 준님과 회의 정말 많이 하면서 공통 세션 순서도 같이 바꾸었다. 병민님 덕에 Django official tutorial로만 진행되던 과정을 CRUD1, CRUD2로 재정비했다. 될까 싶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데이터베이스와 크롤링에 거꾸로 수업을 도입해보았다. 비대면 과정 진행후 회고 미팅에서, 극복해야할 포인트와, 오히려 비대면이어서 발전에 도움이 되었던 요소들을 정리하여 공유했고, 그 때의 회의 내용들은 지금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곤한다.
  • 다행히 코로나 여파를 앞뒤로 벗어난 13기부터는 DB모델링을 프/백 공통세션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하였고, 뭇 프론트 수강생분들의 원성 짙은 눈빛을 받았다. 한 분으로부터는 ‘소헌님, 모델링 세션을 듣고 저는 정말 프론트구나 하고 알게됐어요. 감사해요’ 라는 웃지 못할 감사 인사를 들었다😂 그 분 좋은 회사에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훨훨 날고 있으시다. 지안님… 잊을 수 없어요… 어찌됐든 이렇게 지훈님이 컴백하시기 전까지 커리큘럼 재정비를 끝내겠다는 목표는 달성되었고, 지금 보이는 아쉬운 부분은 추후 백엔드 커리큘럼 ver.3으로 보완될 것이다. 벌써 기대된다.

📍 4분기 - 업무와 학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간

내 일이, 성취감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인정하는 내가 될 수 있어야한다.

  • 커리큘럼이 정리된 후, 두가지에 집중했다. 업무의 효율 증대와 수강생 학습 성취도 증가. 3개월차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다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었는데, 3개월차에 기업협업을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진행하는 것에 비해 스스로의 성취감이 크지 않은 분들이 있는 것이었다. 준식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다가 3개월차 기업협업 마무리도 큰 행사이니만큼 전체적으로 다른 팀들과 결과물을 공유하는 미팅 시간을 갖기로 했고, 14기에 바로 도입했다. 멘토들도 3개월차에 활동으로, 혹은 기업협업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서로 수료식 전에 얼굴 보며 정말로 3개월을 마무리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정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 하루가 3개월 전체의 만족도에 기여하는 바가 어떨 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꼭 있어야 하는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 학습 시간을 공유하는 구글캘린더는 매 기수 다르다. 해당 기수의 전체적인 진도에 따라 다르고, 그 달에 포함된 이벤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멘토들은 매주 스케줄링을 진행한다. 매우 중요한 시간이지만 또 반복되는 일정들도 많기 때문에 스케줄 미팅에 투자되는 시간이 많다. 이때 꼭 필요한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하기 위해서, 중요도가 다소 떨어지는 반복 일정 추가 업무는 코드로 만들어서 엔드포인트로 호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을 기꺼이 겪은 이유는 무엇일까

📍 개인의 성장

질량이 아무리 작을지언정, 높이 올라가면 그 위치에너지로 할 수 있는 운동은 어마어마합니다.

김태호 PD가 유재석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이라, 위코드 멘토와 비슷한 역할인 것 같다고 했다. 무한도전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학생이던 내 눈에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는 유재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김태호 PD가 더 눈에 자주 들어온다. 아무것도 없던 무한도전을 13년간 이끌어온 PD의 재량은 대체 얼마나 성장했을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하나의 장르를 대표하도록 만드는 사람. 지난 10개월을 차분히 되돌아보며, 나는 정말로 1년만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것들을 해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양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만하지 않고, 정말로 매달 자부심을 갖고 나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아쉬운 점은 개인 블로그를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회고를 기회삼아 내가 만들어내고, 내가 공부하고, 내가 부족한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글을 꾸준히 써야 겠다고 다짐한다.

📍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배워야 한다

기회는 많이 배운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배움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해요.

나는 운이 좋아서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최적화된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가르쳐주는대로 잘 배우는 사람으로 자랐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내 노력만으로 잘된 것은 아니다.

세상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안 맞았던 사람, 환경이 적합하지 않았던 사람, 큰 시련이 있었던 사람, 뒤늦게 눈이 트인 사람,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먼 길을 돌아온 사람까지. 그 사람들이 전부 학교 교육으로 평가받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데에 발목이 잡힌다는 것은 어찌보면 정말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그 업을 통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또 내 삶으로 다른 인류의 삶에 공헌해야할 의무가 있다. 대학교에서 배운 거의 유일한 깨우침 두번째이다. 첫번째는 코딩이다.

수강생분들은 여기까지 오기 위한 과정이야 어쨌든 다음 꿈을 갖고 살아갈 목표를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내가 이 두드림에 답을 찾는 과정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내가 더 성장할 수 있고, 내가 더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는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건, 가끔 정말 감격스럽고, 또 매우 자주 뿌듯한 일이다.

그래서 멘토로서 2020년을 잘 보내었는가

잘 보냈다. 내년은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면서 더 잘 보낼 계획이다. 돌아보니, 내가 교육을 한다는 점을 조금 부담스러워했다. 내게 있어 교육은 내가 잘 받아들인 주입식 교육의 느낌이 조금 더 컸기 때문이다. “나는 개발자고. 멘토링을 하는 거지, 교육은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책임감을 덜고 싶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팀 준식님에게서 추천받은 도서, 미래의 교육, 올린 에서 뼈를 세게 얻어 맞음과 동시에 우리가 잘 해나가고 있음을 응원 받은 문장이 있다.

세상은 자발적 동기에 의해서 학습하는 평생 학습자를 요구하는데, 교육은 아직도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는 사람을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 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은 강의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문장들을 보며, 나는 개발자이면서 교육을 동시에 하고 있음을 요만큼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큰 마음 먹고 개발자의 세상에 발들인 분들이 일방적인 사고에 갇혀 내적 동기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꾸준히 가이드하면서 보낼 것이다. 우리와 함께 공부하는 학습 내용이 세상의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보낼 것이다.

사실상 처음으로 나를 회고해보았다. 멘토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일상도 다시 회고 하는 시간을 꼭 갖도록 해야겠다. 설 연휴에 회고록 한 편 나온 것으로 매우 알찼다.


2021.02.14.Sun